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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파는 동물에게 더 혹독하다
분류: 산문
이름: 김필연


등록일: 2018-01-29 11:07
조회수: 352 / 추천수: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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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는 동물에게 더 혹독하다  
/金必然


연일 계속되는 기록적 한파에 바다가 얼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카메라를 챙겨 집을 나섰다. 시동을 걸자 차 계기판에 뜬 기온은 영하 17도, 믿기지 않는 수치인데다 요즘 건강이 '몹시불량'인 나로선 '몹시걱정' 되는 날씨이지만 이런 기록적 한파가 아니면 어찌 언 바다를 만나랴 싶어 바다 행을 강행했다.

‘사흘째 최저기온 기록 경신’ 이란 제목의 이날 인터넷 기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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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오전 7시 33분께 -17.8도까지 수은주가 내려가면서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아침을 맞았다. 평년의 이날(-6.4도)과 비교했을 때 11.4도나 낮은 수준이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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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과연 바다는 멀리 수평선까지 얼음으로 덮여 강 하구인지 바다인지 눈을 의심케 했고 선착장에는 크고 작은 어선들이 동장군에게 맥없이 항복하고 부동자세로 얼음에 갇혀 있었다. 가슴 콩닥이며 언 바다를 몇 컷이나 담았을까. 손이 시리다 못해 아려 와서 차로 돌아가려는데 야옹~ 고양이 소리가 들린다.

양지쪽 벽에 웅크리고 있던 길냥이 한 마리가 일어서더니 경계를 풀고 내 다리 춤에 제 옆구리를 비비며 따라온다. 음식 찌꺼기도 돌덩이처럼 얼었으니 배가 고플 게 뻔하다. 얘야, 줄 게 없어 미안하구나, 간식거리라도 주머니에 넣어 올걸. 정말 미안하다. 양말도 두 켤레나 껴 신고 여분의 장갑까지 챙긴 나 자신이 슬며시 부끄러웠다.

다시 차에 올라 갯벌 쪽으로 가서 세웠다. 찬 기운 가득한 겨울 바다, 썰물에 드러난 갯골이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면서 멋진 패턴을 그려준다. 그때 바람이 지나갔나? 등 뒤에서 가녀린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 마른 풀숲으로 다가가니 갓 태어난 듯 새끼 염소 세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찌나 작은지 언뜻 보면 잡풀에 엉겨 붙은 검정 비닐 조각 같았다.

그중 두 마리는 연신 앵앵거리며 서로의 몸에 코를 묻고 둘이서 바싹 붙어 있었고 한 마리는 약간 떨어진 곳에 미동도 하지 않고 있기에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사체였다. 편안한 모습으로 미루어 숨을 거둔지 오래지 않은 듯. 어미가 근처에 있을까? 사방이 휑한 벌판이라 있다면 쉽게 찾을 텐데 인근에는 없는 듯했다.

어쩌나. 이대로 방치하면 남은 새끼염소도 안전하지 않을 터. 물을 줘볼까? 차 안에 물이 있긴 하나 워낙 차서 새끼염소에게 도리어 해가 될 것도 같아 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무슨 조처를 취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해는 중천인 정오를 넘어가는데 차 계기판 온도는 영하 11도. 녀석들 이 상태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안절부절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다 찾아낸 결론은 119였고 전화를 했다. 그쪽도 난감하긴 매 한가지. 답은 방목하는 염소이지 싶고 주변에 어미가 있을 텐데 사람이 있으면 다가오지 않을 테니 자리를 피해 주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거다. 궁여지책이긴 해도 달리 묘안이 없고 해서 돌아갈 때 안부를 확인하기로 하고 일단 자리를 피했다.

갯골에 든 바닷물이 강추위에 얼어 하얗게 부정형 패턴을 만든 갯벌, 흔치않은 풍경에 혼자만의 겨울바다를 오롯이 누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차 한 대가 멈추어 서서 나를 바라보는 게 아닌가.

차에는 군인 두 명이 타고 있었는데 근처에 군부대가 있어 이 일대는 촬영 금지구역이라고 경고를 한다. 비록 경고를 받았을지언정 한적한 해안도로에서 사람을 만났으니 나는 오히려 반가워 얼른 새끼염소 얘기를 했다. 군인아저씨 왈, 이장이 키우는 염소일 거다. 이장에게 전해주겠다 하고는 재차 내게 떠나란 경고를 던지고 그들도 떠났다.

돌아오는 길, 서서히 차를 몰아 새끼염소가 있던 곳에 가 보았다. 그러나 바람에 날아온 생활 쓰레기만 흔들거릴 뿐 새끼염소는 그 자리에 없었다. 녀석들 무사할까. 꼬물거리며 울어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춥다. 오늘 더 춥다. 내일은 다시 기록을 경신할 것이다..., 라며 한껏 톤을 높인 한파 특보를 접하며 그저 내 몸 챙기기 바빴지. 찬바람 몰아치는 벌판이 삶터인 동물들에게, 관광객이나 상가에서 내다 버리는 음식물에 의존하는 떠돌이 동물에게, 이 한파가 얼마나 혹독한 시련인지 목격하기 전까진 알지 못했다. 힘이 들어도 우리에겐 노력하면 넘길 수 있는 난관이지만 그들에겐 사활이 걸린 재앙이라는 것을. /金必然









       
바 위   2018-01-30 02:18:37
~ 연필 ~
`
글 가슴
놀랜 추위
언 파도소리
막 숨죽 보리라 !
`
고맙습니다 !!
김필연   2018-01-31 09:41:51
감사합니다~
오경수   2018-01-31 12:35:39
나이 어린 한 소녀의
일기장을 훔쳐 보는 듯...

내 가슴이 콩닥 콩닥~^
아기 염소 엄마 품에 들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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