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제목: 나의 애서(愛書)
분류: 산문
이름: 김필연


등록일: 2018-06-04 13:39
조회수: 78 / 추천수: 17


dogam_2_1.jpg (215.4 KB)



나의 애서(愛書)



책장을 정리할 때면 으레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며 곁에 좀 더 두어야 할 책과 내보내야 할 책 사이에서 갈등을 빚게 마련이다. 그 중 간택과 낙오의 확률 50%인 책 정리 과정에서 족히 50년 넘게 살아남은 책이 있다.

그 많던 일기장도 깨알 메모 된 수첩들도 푸릇한 시절 주고받은 손편지들도 다 떠나보냈는데. 터실터실한 갱지에 인쇄된 이 책, 종이가 삭아서 만질 때마다 부스러지는 이 책은 중학교 입학 때 받은 새 책들 중 하나인 학생생물도감으로 1966년 1월 개정판으로 발행된 236쪽짜리 책이다.

50년 세월 동안 책 정리 때마다 잠깐씩 펼쳐보고 추억에 잠기곤 했는데 오늘은 책을 펼치니 낭랑한 목소리까지 들린다. 분가하기 전 딸아이가 이 책을 보고는 ‘컬러도 아니고 사진도 아니잖아!’ 라 했다. 맞는 말이다. 컬러도 아니고 사진도 아닌 이 책이 긴 시간 나에게 식물에 대한 궁금증을 참 많이도 풀어주었다.

다소 거친 식물 세밀화를 보며 상상력을 동원해야 했던 그 시절, 원색도감이 나오기까지는 내게 이 책이 식물공부의 최선이었고 최상이었다. 실은 원색도감이 나온 뒤에도 이 책은 계속 내게 좋은 참고서였다.

유년부터 유독 풀이나 꽃을 좋아했던 나는 초등학교 시절엔 짬날 때마다 집 화단이나 학교 뒤 화단을 기웃거렸고, 꽃 이름을 외우며 꺾어서 책 속에 넣거나 눌러서 압화와 표본을 만들고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책을 뒤적이다 오늘은 ‘빵나무’ 아래 그어진 밑줄에 시선을 빼앗긴다. 당시 중1 여학생은 빵나무에 표시를 하며 어떤 호기심을 품었을까? 그로부터 39년 후 중년의 그녀는 태평양에 있는 섬나라 미크로네시아를 방문했고 그곳에서 처음 빵나무를 보았고 그곳 주민이 요리해 주는 빵나무 열매를 먹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미크로네시아 방문 당시엔, 39년 전 그녀가 도감 속 빵나무 설명 아래 밑줄을 그었던 사실을 전혀 기억해내지 못한 채였다.

하긴 추억이란 게 구슬을 꿰듯 또렷한 것만 추억일까? 기억의 퍼즐을 맞추며 놓칠 뻔 했던 느낌표 하나를 찾아내는 소소한 즐거움도 따져보면 바로 작은 조각으로부터 연유한다는 걸 깨닫는다.

시간이 머물지 않듯 책 역시 머물지 않고 왔다 가고를 반복할 것이다. 그에 맞물려 나의 책 정리도 계속 될 테고 간택과 낙오의 갈등도 계속되겠지만 그래도 이 책만은 100% 무갈등 간택으로 내 곁에 남을 것이 분명하다. 고마운 책이다. /金必然








       
오경수   2018-06-04 17:20:37
이제 알았습니다.
샘이
식물도감이 되기까지의 비밀을,,,ㅎㅎ
김필연   2018-06-05 17:12:27
아이고~ 식물도감이라니...
정말 식물의 고수들을 보면 저는 새발의 피도 못 됩니다.
암튼 풀이나 꽃은 물리지도 않고 늘 잔잔한 에너지를
전해 받고 감사가 절로 나오는 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오샘 부부로 부터 받는 에너지도 그것 못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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