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제목: 또 한번 모란이 필 때까지
분류: 산문
이름: 김필연


등록일: 2008-09-11 13:21
조회수: 6341 / 추천수: 988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 글 김필연


우리나라의 자살로 인한 사망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란 사실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현재 인구 10만명당 자살 사망률은 21.5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고, 하루 평균 35명이 자율에 의해 생을 마감하고 있다. 그들은 과연 그들의 사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을까, 그에 반해 사후를 예견하고 미리 그 그림을 그려보는 사람도 있다


*
열대야와 씨름하던 어느 여름날 밤, 쉽게 잠이 들 것 같지 않아서 자장가 삼아  텔레비전을 켰다. 12시가 넘은 시간인데 음악관련 토크쇼가 방영 중이었고 마침 가수 조영남 씨가 초대되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소리만 들으려 했는데 무엇이 조종했는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서 안경까지 찾아 끼고 두 사람의 얘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조영남 씨 특유의 어눌한 듯한 말투와 어설픈 듯한 몸짓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 없었다. 자신이 전하고 싶은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간을 불규칙하게 몰고가는, 철저히 계산된 연착륙적 전략이 아닐까 하는 비약을 하면서도 어느 순간에 나는 그들 대화에 깊이 몰입해 버렸다. 그날 토크쇼 진행자와 조영남 두 사람이 주고받은 얘기를 정리해 보면, 가수들은 선배가수가 세상을 떠나면 그의 빈소 앞에서 고인이 생전에 부른 대표곡을 부르는 전통? 같은 게 있다는 거였다.

2005년 백설희 씨의 빈소 앞에서 그분의 히트곡 '알뜰한 당신은'을 불렀는데 당시 조영남 씨는 가사와 그 분위기가 맞지 않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고, 며칠 뒤 고운봉 씨가 타계했는데 그분 빈소에서는 '선창'을 불렀다 한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로 시작하는 곡을 흥얼거리면서. 그때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힘들게 참았는데 마침 부루벨스 사중창단 멤버인 분이 조영남 씨 곁에 서 있길래 그가 농을 걸기를, '형! 형 때는 '잔치잔치 벌렸네....' 그거 불러줄까? 하며 웃었다고...,

그때 그는 엄숙해야 할 장례식장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상황을 겪으면서 골똘히 생각을 했다고 한다. 과연 내가 떠난 뒤에는 후배 가수들이 나의 빈소에서 어느 노래를 불러줄까, '구경 한 번 와 보세요~'(화개장터)를 부르겠지... 그렇지 않겠느냐? 분명히 그럴거다! 라는 표정으로 관중과 진행자를 번갈아가며 시선을 맞추는 거였다.

이어 그는 이제하 시인이 작사 작곡한 노래라고 하면서 곡의 일부분을 반주없이 불렀다. 가사가 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내 가슴에 꽂힌 가사는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이 노랫말을 쓴 시인은 다음 모란이 필 때까지는 나를 기억해 주리라..., 아니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나 보다. 그런데 그런 노래가 있긴 있었나? 나는 벌떡 일어나서 컴퓨터를 켰다. 시간을 보니 새벽 1시가 훌쩍 지나 있었다. 위 가사로 검색했더니 금세 노래가 흘러 나왔다.


모란동백 /이제하 작시작곡, 조영남 노래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들녘에 눈이 내리면
상냥한 얼굴 동백 아가씨 꿈속에 웃고 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덧 없어라 나 어느 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래 벌에
외로이 외로이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동백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또 한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모란이 지고 다음 모란이 필 때까지는 일 년이 걸린다. 과연 이듬해 다시 핀 모란을 보며 남은 자들이 그때까지만 그를 기억할까 싶었다.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모란이 필 때마다 어쩌면 모란을 볼 때마다 그를 기억할 것 같았다.

그렇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남은 자들이 그를 기억하며 부를 노래로 이 곡이 썩 괜찮을 것 같았다. 조영남, 그 사람 참 멋진 사람이구나, 그가 떠난 뒤에는 후배들이 그를 위해 이 노래를 불러줄 게 분명하다, 일화를 빗대어 유머러스하게 엮어 던진 유언 같은 그의 얘기는 되뇌면 되뇔수록 가슴 한쪽이 서늘해지는 뭔가가 있었다.





 




.
      
       
바 위   2008-09-13 19:10:01
그대는
오늘 내일

逍遙하는 나그네라

어느날
심오하신 외로움 만나는 날

기러기 北天가며 回歸 약속 혼자 새기네


바람이 울고간 자리엔
바람 꽃 혼자 피고
고독함 쓸고 간 오늘 날 일거니다.


충추가절 이소서
고맙습니다...
김필연   2008-09-17 23:31:37
에구~ 제 얘기는 지극히 가벼운 내용입니다.
바위님 댓글을 읽으니 우문현답 같아서 송구스럽습니다.
잠시 저의 후일 생각을 해 보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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