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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을에 생각하기 - 부자 노숙인
분류: 산문
이름: 김필연


등록일: 2018-11-02 14:34
조회수: 153 / 추천수: 26






가을에 생각하기 #0712-30
/ 부자 노숙인


인도의 가장 오래된 도시인 바라나시는 도시에 접한 갠지스강이 힌두교뿐 아니라 불교와 자이나교에서도 주요 성지인 탓에 엄청난 수의 순례자와 관광객이 모여들어 붐비는 곳이다. 2007년 첫 바라나시 방문 때의 일화로 그날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 식사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카메라를 챙겨 숙소 주변을 걸었다.

대다수가 선호하는 명소를 일부러 피해 다니거나 대로를 벗어난 후미진 곳을 좋아하는 내 여행방식에 맞추어 기차역 뒤 한산한 길을 택했다. 해가 건물 사이로 서서히 내리고 있었지만 아직은 햇살 기운으로 밝은 오후였는데도 불구하고 잠을 청하려는 노숙인이 있었는데, 자리를 깔고 막 담요를 덮어 쓰려던 찰나에 그와 내 눈이 마주쳤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내 쪽에서 먼저 말을 건넸다. 이목구비가 반듯한 외모에다 언어 구사도 깔끔한 젊은이였다. 유쾌하게 몇 마디 나누고 돌아서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벽에 있는 ‘내 사자’를 보고 가도 좋다! 라고 했다. 고맙단 인사를 하고는 그 말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한동안 더 길을 어슬렁거리다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담요를 덮어쓴 그가 다시 내 눈에 들어왔다.

처음 그를 대했을 땐 허락을 받고 사진을 담았지만 이번에는 자고 있으니 실례를 무릅쓰고 한 컷 더 담았다. 그때야 그가 헤어질 때 내게 던진 ‘내 사자‘가 생각났다. 둘러보니 벽에 사자 비슷하게 생긴 동물 머리가 그려져 있고 그 옆에 다음 작품인 듯싶은 밑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그랬다, 그가 잠을 자는 곳은 공공건물이지 싶은 담벼락 아래였고, 담벼락은 바로 그의 갤러리였던 셈이다. 그래서 낯선 나그네에게도 당당하게 자신의 작품 ‘내 사자’를 자랑한 거라고 추측을 했다.







주변에 부자?라 칭하는 사람 중에 개인 소유의 갤러리를 가진 자가 몇이나 될까? 비록 노숙을 택했지만, 그의 삶은 갤러리 때문에 진정 부요해 보였다. 그에게 호기심이 생기면서 유심히 살펴보니 그의 소유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끈이 찢긴 슬리퍼 한 켤레, 바닥에 깐 먼지투성이 낡은 누비요 한 장과 이불로 쓰는 담요 한 장, 반쯤 물이 든 헌 페트병 하나, 머리에 쓰거나 목에 두르지 싶은 머플러 한 장, 호신용으로 보이는 돌멩이 하나, 그게 전부였다.

누구나 이사 갈 때 짐을 싸 보면 안다. 사람이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물건이 필요한지. 소용없을 것 같아 내치고는 다시 들이기를 반복하며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내 삶에 비하면 그는 달랑 몇 가지 물건으로도 부러울 만큼 여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비록 저녁을 거른 채 일찍 잠든 그의 배 속은 비었을지라도. 그가 내게 자기 사자를 보고 가라고 할 때 그 표정이 얼마나 천진하고 화사했는지.










.
       
오경수   2018-11-04 17:46:00
그 양반 나하고 좀 비슷한 면이~ㅎㅎ
가진 것 없는 저도
시덥지 않은 부심은 좀 있는 것 같아서...ㅋㅋ
김필연   2018-11-08 11:43:47
ㅎㅎ~ 그 양반, 이 양반 다 멋진 양반~~~
긍까 그런 사람들 가족들이 하는 공통적인 말,
'돈 안 되는 일에 목숨 걸지 말고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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