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제목: 황매화 이야기
분류: 산문
이름: 김필연


등록일: 2008-03-18 16:44
조회수: 7045 / 추천수: 1161


hwang_7.jpg (134.3 KB)




황매화, 만찬장에서 다시 피다



야생화 관련 서적에서 본 꽃 한 송이가 동기가 되어 내 작업 하나를 완성한 이야기로, 한 장의 사진이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 소중한 경험으로 남은 경우이다.

책에서 그 꽃을 접한 때가 1990년대 후반으로 기억되는데 당시 나는 황매화의 겹꽃은 더러 보았지만, 홑꽃은 본 적이 없었기에 그 황매화 홑꽃은 내 뇌리에깊게 각인이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 대규모 국제행사 준비로 온 나라가 분주하던 때에 청와대에서도 20년 가까이 사용해 오던 만찬장과 접견실의 카펫 교체 계획을 세웠다.

모 대학 교수팀에게 카펫디자인 용역을 의뢰해 디자인이 완성되었고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카펫의 미니어처를 만들었는데 몇 차례 시도 끝에 그 디자인은 실물 제작으로는 불가능이란 판정이 났다. 그러자 청와대 측에서 대안으로 국내 7-8개 카펫전문업체에 지정공모 방식으로 카펫 디자인을 공모했다. 실무와현장 경험에 비중을 둔 대안이었다.

뜻밖에 K카펫회사로부터 내게 디자인 의뢰가 왔다. 카펫회사와는 인연이 없었는데 예전에 계열사인 K호텔의 카펫을 디자인한 인연이 닿은 것이었다. 마침 그 회사의 수석 디자이너가 공석이라 나에게로 그 일이 날아온 것이다.

작업 기간이 워낙 짧았던 터라 디자인 콘셉트를 놓고 고민하다가 실외 이미지를 실내에 연출해 보리라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고는 디자인 모티브를 찾다가 언젠가 야생화 책에서 본 황매화가 떠올랐다. 금완(金碗 금그릇)이라는 별칭이 만찬장과 잘 어울리고 꽃의 황색이 우리 전통색인 오방색의 다섯 방위 중 중심색이니 세상의 중심을 의미할 뿐 아니라 황제를 상징하는 황금색이기도 하고, 꽃말도 '숭고' '높은 기풍'이어서 주저 없이 선택했다.

카펫의 바탕색은 청색 기를 띤 녹색으로 결정했다. 노란 꽃색을 잘 받쳐주는 보색 계열에 실외를 상징하는 하늘과 초원의 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무척 위험한 시도였다.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용기를 내긴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카펫의 바탕색으로 녹색은 좀체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디자인이 무산된 상황에서 마감이 임박하거니와 나 역시 디자인 콘셉트와 모티브를 설정한 상황에서 시행착오를 겪을 만큼 시간적 여유가 없어 위험요소를 끌어안고 작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또다시 난제에 부딪혔다. 활짝 핀 꽃만 봤던 터라 꽃봉오리가 문제였다. 만개한 꽃에 봉오리를 섞어야 다양한 패턴이 나올 텐데 여기저기 뒤져 봐도 봉오리에 대한 자료는 찾지 못했다. 궁여지책으로 황매화가 장미과 식물이므로 유사하게 생긴 장미과 꽃들을 찾아 봉오리를 유추해낸 후 작업을 마무리했다.  







마침내 만찬장 카펫에 내 디자인이 선정되어 K회사는 카펫의 시공권을  확보했다고 좋아했고 나 역시 뿌듯했다. 그러나 꺼림한 기분은 지울 수 없었다. 누구도 황매화 꽃봉오리가 이상하다?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실제와 모양새가 다를 경우 이 얼마나 난감한 일인가. 드디어, 가로세로 24m 150평 크기의 한장짜리 수직카펫이 완성되었고 제작 장소 진주에서 청와대까지 수송도 쉽지 않았다. 길이 24m 짜리 카펫을 둘둘 말았으니 부피도 부피지만 길이를 감당할 수송차량이 있기나 한가,

더구나 그 카펫을 실내로 들여놓는 일도 만만치 않았는데 우여곡절 끝에 카펫이 설치되던 날, 나는 현장에서 결과물을 보면서도 꽃봉오리 때문에 시종 발이 저렸다. 계속 그 기분으로 살 수는 없었다. 문헌으로도 탐문으로도 알 수 없으니 직접 심어서 꽃을 피워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겠다 싶어 봄이 오자 화훼시장으로 달려가서 황매화 묘목을 샀다. 묘목 가게 주인에게 거듭 물어보기를 "이거 홑꽃이지요?" 그리곤 시댁 화단에다 심었다. 묘목은 건강하게 뿌리를 내려 잎이 나고 꽃봉오리를 맺었는데, 내 초미의 관심사는 꽃봉오리였다.






위 사진은 유추해서 그린 꽃봉오리이고 아래 사진은 화단에 심어 이듬해 꽃을 피운 황매화이다.






그래픽아트가 세밀화와는 달라서 사물의 특징을 소소하게 표현하지 않는 약화(略畵)임을 고려한다면  거의 중동끈을 잡았다고 너그러운 자평을 한다. 책 속에 인쇄된 상태로 피었던 황매화 한 송이가 국내외 빈(賓)을 맞는 만찬장에서 다시 피어난 것이다. 영원히 지지 않는 꽃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화사한 미소로 손님을 맞고 있으리라. 비록 밟힐지라도. /金必然

  






       
이호규   2008-03-18 20:28:07
주인장! 난생 처음

옳바른 이야기.
웃지 않고 하는 이야기.
진심을 담뿍 담아 하는 이야기.

"존경합니다."
말나리   2008-03-18 22:19:47
제가 당신을 전혀 모르던 사람이었을지라도 저 카펫그림만 보고도 반할뻔 하겠습니다 ^^
제 비밀의 화원 개울가에 야생처럼 피는 홑황매화가 있는데 피면 보여 드릴께요 .
사진도 있는데 못찿겠네요 .
온달   2008-03-19 05:21:12
홑황매화 처음 듣습니다 !
카펫에 대한 사연 대단하십니다.
하얀마음   2008-03-19 06:26:05 [삭제]
홑황매화가 남부지방에서도 잘 자랄 수 있다면 친정 아버지 곁에 심어 주고 잡습니다.
꽃이 필때까지 건강하게 사리라고 글고 피고지는 꽃 보며 자슥들 걱정내려놓으라꼬
오경수   2008-03-19 09:48:20
선생님의 영감이 정말 예쁜 황매화로 활짝 피셨군요. 짝~ 짝~ 짝~
김필연   2008-03-19 11:04:40
예, 이 글은 4년전에 긁적거렸던 내용을 기초로 해서 다시 썼습니다.
요즘은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란 인사가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그런 나이가 되었나 봐요.
그래서인지 흩어져 있거나 미완의 일들을 하나둘 찾아서 재정리 하고 있는데
세월이 지난만큼 기억을 재 해석하는 부분도 중요하다는 걸 정리하면서 깨달았습니다.
계속 재탕 삼탕이 있을텐데...ㅎㅎ~ 너그럽게 처음 읽는 것처럼 읽어 주세요...^^
신정순   2008-03-19 13:38:12
김.필.연 님!

당신은 진정 프로이며,
specialist 입니다.

멋진 사람입니다.
멋진해마   2008-03-19 18:03:36
뭘 그리 노심초사 하셨을까?
그냥 둬서 봉오리가 피어서 황매화 꽃이 활짝 피면 황매화 봉오리가 맞는거고
장미꽃이 활짝 피면 장미꽃 봉오리인거지요....
누군가가 시비걸면 좀만 더기다려라 꽃이 피면 저절로 알게 될테니... 그러세요!! ( 그런데 이거 말이 되나요? -_-; )
말나리   2008-03-19 19:48:26
홑황매화라는 이름은 없고
황매화/겹황매화
그렇게 부르네요 ^^
김필연   2008-03-19 19:52:30
ㅎㅎ~ 홑황매화라 칭한 적은 한번도 없는 걸요...
황매화 홑꽃이라 했지요. 그게 그건가...^^
그나저나 그 야생에서 보셨다는 황매화는 언제 보여 주실 건가요?
말나리   2008-03-19 22:27:28

황매화1.jpg


 


황매화2.jpg


 

2002.5
이 사진 찿느라 온 집을 다 뒤졌네요 에효
김필연   2008-03-19 22:39:29
어머니나~ 진짜 다르네요. 잎은 거의 비슷한데 꽃이...
에고 보고자바라, 언제 짬내서 앞장 서세요. 약 올린 값으루다...^^
말나리   2008-03-19 22:49:42
헤헤 한장 더 추가 ^^
2002년도 똑딱이 995로 찍은건데 골동품 찿은것처럼 재밌어요 ㅎㅎ
황매화3.jpg

김자윤   2008-03-28 09:44:04

2007.4.15 선암사
김병희   2008-04-02 05:11:32 [삭제]
여러해 되었지요 필연님 사무실에서 카펫사진이 걸려있던걸..매화를 그리면서도 意畵라 애매하게 칭하면서 그렸는데
다시보니 더 반갑습니다 어떤 색보다 화려한 색의 대비 또 칭찬의 말을 아니 할 수가 없슴다
김필연   2008-04-03 20:58:36
고맙습니다.
바 위   2008-04-04 23:13:20
새 처럼

날아가고 싶은 날

하늘 건너 마을 꽃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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