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제목: 콩마당에서
분류: 산문
이름: 김필연


등록일: 2014-10-25 10:29
조회수: 2278 / 추천수: 306


_PY_2001_600.jpg (362.7 KB)




가을 색 짙게 깔린 시골 들녘, 더러 추수를 끝내기도 했지만 아직 낫을 기다리는 수천수만의 벼 이삭이 정오 해를 받아 황금색으로 반짝인다. 운전 중에 눈에 들어오는 풍경마다 탄성을 지르다 보니 심방 박동은 빨라지고 상대적으로 차 속도는 느려져,

뒤따라 오는 차가 있나 뒷거울을 보며 서행에 서행을 거듭하던 중 키 작은 감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주먹만 한 감들을 주렁지게 매단 모습이 찰나에 뇌리에 박혔는데, 그 잔영이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기는커녕 코앞에서 어른대며 줄곧 따라온다.

이길 재간이 있는가. 결국, 차 머리를 돌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갈등했던 그 시간만큼 한참을 달려서 감나무를 찾았고 곡물창고인 듯한 입구에 주차했다. 집 안으로 들어서는데 감나무 앞쪽에 대파와 남새 거리를 심은 텃밭이 낮은 자세로 앉아서 나그네를 반겨준다.

발이 있어 달아나지도 않을 감나무이건만 걸음 소리를 죽이며 다가서는 순간, 앞마당을 가득 채운 콩멍석이 감나무보다 먼저 내 눈을 잡아끈다. 아! 이 얼마나 정어린 그림인가. 꼭 울 엄마 몸집만 한 어르신이 멍석 한 곁에 앉아 벌레 먹은 콩을 고르고 있었다.

'올핸 가물어서 그랬는지 벌레가 콩을 많이 먹었네...' 어르신이 먼저 곁을 준다. 내 눈에도 더러 벌레 먹은 콩이 보이기에 잠시 손을 거들다가 '감나무에 감이 많이 열렸어요!'라며 슬몃 어조룰 높이니, 감나무를 살피면 익은 것이 있을 터이니 따서 먹어보라 한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벌써 눈으로 맛나게 먹은 걸요.' 저 감들은 나무에 매달린 채로 바라보는 게 더 맛나지 않겠느냐고 힘주어 답했다. 내심 콩 고르는 어르신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적절한 기회를 엿보던 터라 감 맛은 안중에도 없었으므로 잘난 척을 한 격이 되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서로 간에 낯섦이 허물어질 즈음 나는 슬슬 흑심을 드러내어, '저..., 어르신, 사진 좀 담아도 될까요?' 표정을 살피며 부탁을 했는데 즉답을 하지 않는다. 대신 고운 미소를 지어 보이기에 허락한 걸로 알고 콩 고르는 모습을 몇 컷 담았다.

한여름 땡볕을 견딘 콩들이 땡글한 낯빛으로 너른 마당을 채우고 축복처럼 쏟아져 내리는 가을볕, 그 가을볕을 손등에 얹고 쓰다듬듯 찬찬히 콩을 고르는 마디 굵은 어르신의 손길이 올진 가을볕만큼이나 따스웠다. 여느 해처럼 올가을도 참 곱고 예쁘다. /金必然 
우리 모두의 어머니   /金必然


  
  






       
오경수   2014-10-26 22:15:52
동글 동글~
가을볕 콩마당을
거북등 어머니 손길이 지나간다

그 손길 따라
콩들이 서로 얼굴 부벼대며
깔깔깔 웃는다^^

넓은 앞마당이
순식간에
온통 웃음밭이다

이리 휘적~ 저리 휘적~
콩굴리기 어머니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진다^^

* 이 사진 한 장이 이리 감흥을 줍니다. 샘, 책임 지시지요^^
김필연   2014-10-27 09:38:01
꽁뜨 한편 읽고
명시 한편 얻으셨네요.
이래서
서로 건들고 지분거리고 집적대면서
잠자고 있는 세포들을 깨우는 일,
함께 해야지요.
고맙습니다.
앙코르/이송영   2014-11-11 10:47:52
멋지시네요...^^*
김필연   2014-11-21 23:42:48
무어가 멋지다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 할머니 아니면 이 할머니이므로 일단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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