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제목: 근사한 침략
분류: 산문
이름: 김필연


등록일: 2015-07-27 17:14
조회수: 1444 / 추천수: 193


_PY_5769_600_1.jpg (111.9 KB)


오래전 겨울, 막바지 추위에 이사를 했다. 이사한 사무실 북쪽 창가에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는데 버석 마른 게 죽은 것 같아 그땐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못했다. 남쪽으로부터 꽃소식을 받아 든 봄날 아침, 춘흥을 이기지 못해 창을 열었는데 살아 있는 것 같지 않던 그 나무 잔가지에 연초록 새움이 터져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저 여기 있어요, 숨 쉬고 있어요,'
'그랬구나, 너 산 녀석이었구나,'

놀람도 잠시뿐, 여름이 되면서 창은 자연스레 닫혔고 나무의 존재도 자연스레 잊혔다. 그러다 한여름 무더위가 몽니를 부리던 날 냉방기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창을 열었다. 이런, 창을 열자마자 수천수만의 초록 이파리들이 냅다 짙푸른 함성을 지르며 위용도 당당하게 내게로 달려들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참 근사한 침략이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침략이 또 있을까. 너 거기 있었는데, 그리 열심히 살고 있었는데 나는 그저 내 앞만 보느라 너를 잊었구나. 그래, 오늘은 네 초록빛 독한 술에 취해 종일 비틀거려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다 어쩌지 못하겠다. 고맙다 나무야.


*
사람 떠난 지 오랜 폐공장 터를 지키는 풀꽃들, 사람은 떠나도 또 봐주지 않아도 제 할 일을 하는 한결같은 자연의 묵묵함에 깊은 경의를 보내며. /金必然









       
김호종 / White Paper   2015-08-17 09:00:13
근사한 침략도 매우 좋지만
근사하게 받아 주시는 감성이 축복이며 부럽습니다.
김필연   2015-08-24 14:30:33
ㅎㅎ~ 해석이 멋지십니다.
언제나 후덕한 성정, 또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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