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제목: 잡초의 사전적 의미
분류: 산문
이름: 김필연


등록일: 2014-05-26 17:48
조회수: 2404 / 추천수: 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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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눈길 닿는 곳마다 초록이 넘쳐난다. 오돌토돌 새순으로 돋아나던 아기 초록이 한두 달 만에 다 자란 듯 성숙한 초록으로 온 산과 들을 덮고 있다. 그 초록 중에서 특히 들이나 논밭을 덮는 초록을 눈여겨보자, 초록을 내는 식물 모두가 사람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고 생활에 유용해서 환영받고 있을까.

농부에게 물어보라, 그들이 가꾸는 작물 외에 청하지도 않은 여러 풀이 재배지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더부살이를 하는데 반갑고 달가운지. 단연코 성가시기 짝이 없을 것이다, 종류는 또 얼마나 많은지 이름조차 다 외지 못하니 재배지에 무단 침입자인 그들을 뭉뚱그려 잡초라 하고 또 널리 그렇게 부르고 있다.

농부뿐이랴, 손바닥만 한 화단을 가꿀 때도 잡초와 싸우지 않고 견딜 재간이 있는가. 싸운다는 말은 인간이 필요로 하는 재배작물보다 몇 배 왕성한 잡초의 번식력 때문에 작물의 생장을 방해하고 품질까지 떨어뜨리기 때문일 것이다. 햇빛은 물론, 물과 영양분을 잡초에 빼앗기지 않으려 인간은 수확 때까지는 쉴 새 없이 잡초 제거작업을 치러야 하는데 그야말로 잡초와 인간의 전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야생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중에서도 유독 작은 풀꽃에 애정을 쏟은 뒤부터 '잡초'라는 표현을 멀리해왔다. 잡스러운, 잡다한, 잡상스레 에서처럼 잡(雜)이란 글자가 들어가면 왜인지 변변치 않고 하찮게 여겨지는 데다 관심의 대상은커녕 상스럽고 천한 감까지 들어서 내 입으로 잡초라 부르면 그 모든 느낌을 수긍하는 것 같아 나만은 저들을 비하하지 않겠다는 배려에서였다.

게다가 시어(詩語) 외에 '이름 없는 꽃', '이름 없는 풀'이란 표현도 쓰지 않았다. 내 아이 내 친구를 몰라주는 것 같아 내 서운함의 발로이기도 했다. 단지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모를 뿐이지 이름이 없는 풀은 단 한 포기도 없다. 억설이지만 식물분류학이 존재하는 이유도 그 이름 때문이지 싶기도 하다. 아무튼, 어떤 풀꽃도 어엿한 이름을 가지고 있고 쓰임새까지 요긴한 것이 대다수이지 않은가.

신약의 발견이나 병, 의원이 귀한 시절엔 우리 주변의 식물은 거의 다 심지어 독초까지도 소중한 약재였다. 한 예로 쇠무릎이란 풀을 보자. 풀도 꽃도 지나치게 수수해서 눈길조차 끌지 못하지만, 쇠무릎의 뿌리는 우슬(牛膝)이라 하여 관절을 강화하고 뼈마디를 튼튼하게 하는 우수한 약재로 알려져 왔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의하면 「생것은 어혈(瘀血)과 부스럼을 없애고 익은 것은 간(肝) 신(腎)을 보양(保養)하고 근골(筋骨)을 튼튼하게 하는 효능이 있는 약재임」으로 적고 있다. 그러니 하찮게 여길 풀이 어디 있고 지천으로 나서 자라 발에 밟힌다 하더라도 귀하지 않은 풀이 어디 있을까.

여하튼지, 이런저런 나름의 판단으로 잡초란 표현을 쓰지 않았는데, 어느 날 문득 국어사전에서 말하는 잡초의 의미가 궁금했다. 내심 잡초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내 고집을 부추기는 설명을 기대하면서 찾아보았다. 그런데 이런! 국어사전에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 이라 적혀 있었다.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렇다. 가꾸지 않아도 봐 주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기특하고 대견한 것들이 바로 잡초였다. 사람이라면 도저히 뿌리 내리지 못할 조악한 환경에서도 불평 없이 터를 잡아 해를 바라고 키를 키워 꽃 피우고 씨를 맺는, 묵묵히 할 일을 해내는 저들, 저들의 삶에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었다.

그런 의미였는데 나는 왜 그리 고집스럽게 잡초라는 표현을 마다했을까. 건기 우기 혹한 폭서를 견뎌내고, 예취기나 제초제 세례를 받으면서도, 하물며 어떤 녀석은 낫을 대어도 쉽게 잘리지 않는 강인함으로 꿋꿋이 살아남아 결실을 보고는, 순리대로 땅보탬 하는 저들, 그리고 저들의 삶.

나는 자주 잡초의 사전적 의미에 비추어 내 삶을 돌아보곤 한다. 춥다 덥다 시다 떫다며 불평 많은 내 삶에 비하면 한두 햇살이 식물일지언정 그 얼마나 진중하고 숭고한 삶의 자세인가. ‘가꾸지 않아도 봐 주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은, 잡초라 불리는 저들의 삶이 내 삶의 숨 쉬는 참고서임을 새삼 되새겨 준 깨달음이고 큰 가르침이었다.  金必然 /시인



서강학보 622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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