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제목: 근사한 침략
분류: 산문
이름: 김필연


등록일: 2015-07-27 17:14
조회수: 1807 / 추천수: 267


_PY_5769_600_1.jpg (111.9 KB)



겨울, 막바지 추위에 이사를 했다. 옮긴 사무실 건물의 북쪽 창 곁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흘깃 봐서 죽은 것 같아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남쪽으로부터 꽃소식이 올라온 이른 봄날 아침, 춘흥을 이기지 못하고 창을 열었는데 죽은 나무라 여겼던 그 나무 가지에 연초록 새움이 터서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저 여기 있어요, 숨 쉬고 있어요,’

아차, 산 나무였구나. 놀람도 잠시, 기온이 올라가면서 냉방기 작동으로 창은 자연스레 닫혔고 나무의 존재도 내 뇌리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러다가 한여름 무더위가 몽니를 부리던 날, 하필 그때 냉방기가 고장 나는 바람에 창을 열었다.

이런이런, 창을 열자마자 수천수만의 초록 이파리들이 짙푸른 함성을 지르며 위용도 당당하게 내게로 달려들었다. 얼떨결에 초록부대의 침략을 받은 셈이다. 이런 침략, 참으로 근사한 침략이 아닐 수 없다.

너 거기 있었는데, 거기서 열심히 살고 있었는데 나는 내 앞만 보느라 너를 잊었었구나. 그래, 오늘은 네 초록빛 잎사귀에 취해 종일 비틀거려도 고맙고 미안한 마음 다 어쩌지 못하겠다.

고맙다 나무야.


*
사람 떠난 지 오랜 폐공장 터를 지키는 풀꽃들, 사람은 떠나도 또 봐주지 않아도 제 할 일을 하는 한결같은 자연의 묵묵함에 깊은 경의를 보내며. /金必然









       
김호종 / White Paper   2015-08-17 09:00:13
근사한 침략도 매우 좋지만
근사하게 받아 주시는 감성이 축복이며 부럽습니다.
김필연   2015-08-24 14:30:33
ㅎㅎ~ 해석이 멋지십니다.
언제나 후덕한 성정, 또 배웁니다.
의견(코멘트)을 작성하실 수 없습니다. 이유: 권한이 없는 회원레벨
     
번호 분류  글쓴이 제목 등록일 추천 조회
152 포토에세이
 김필연
 어머니  5 2015-10-16 182 1372
151 포토에세이
 김필연
 허투루  3 2015-09-18 183 1698
150 포토에세이
 김필연
 섣부른 가을  4 2015-08-26 188 1546
149 산문
 김필연
 꽃가라(はながら)에 대한 소회(所懷)  2 2015-07-27 253 2089
산문
 김필연
 근사한 침략  2 2015-07-27 267 1807
147 포토에세이
 김필연
 옛날국수  2 2015-07-10 201 1691
146 포토에세이
 김필연
   5 2015-06-18 212 1646
145 산문
 김필연
 그 시간의 언어  4 2015-06-02 283 1838
144 포토에세이
 김필연
 꽃신  4 2015-05-19 231 1816
143 포토에세이
 김필연
 가쁜 숨도  6 2015-04-17 216 1772
142 포토에세이
 김필연
 큰 어른  8 2015-03-18 255 2052
141 포토에세이
 김필연
 어디든 갈란다  4 2015-02-16 236 1766
140 포토에세이
 김필연
 함께하면  2 2015-01-29 266 1840
139 포토에세이
 김필연
 송년(送年)과 영년(迎年)  2 2014-11-17 321 2061
138 산문
 김필연
 콩마당에서  4 2014-10-25 382 2639
137 포토에세이
 김필연
 바람은  2 2014-10-20 301 1966
136
 김필연
  2014-10-15 344 2347
135 포토에세이
 김필연
 엄마라는 말  2 2014-09-16 350 2110
134 포토에세이
 김필연
 가을은 선물이다  3 2014-08-20 329 2211
133 포토에세이
 김필연
 여린 숨  2 2014-08-20 365 2123
      
 1   2   3   4   5   6   7   8   9   10  .. 11   [다음 10개]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DQ'Style 
:::김필연 시인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