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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싱의 수상록 - 3회분 텍스트 초록 / 월류봉 이상옥
분류: 여행 & 기타
이름: 김필연


등록일: 2018-02-01 15:28
조회수: 118




<기싱의 수상록> 세번째 토막을 올리면서 참고로 몇 가지 설명을 답니다.




(1) 산사나무는 영어로 hawthorn인데 5월에 피는 이 꽃을 영국인들이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흔히 생울타리 나무로 심기도 합니다. 오월에 피기 때문인지 may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2) 레스트해로 (restharrow)는 콩과의 Ononis속 식물로 자주개자리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듯하고요.
(3) 존시아(Jonesia)니 수눅시아(Snooksia)니 하는 속명이 실제로는 없습니다. (아래 세번째 댓글 참조)


  오늘 나는 좋아하는 오솔길을 거닐다가 산사나무 꽃잎이 길을 덮고 있는 것을 보았다. 흔히 ‘오월의 영광’이라고 일컬어지는 크림색의 하얀 꽃잎들이 떨어진 후에도 향기를 잃지 않고 길에 흩어져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봄이 끝났음을 알았다.

  나는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이번 봄을 향유했던가? 내가 해방되던 그날 이래로 나는 새봄의 탄생을 네 차례나 겪었지만, 오랑캐꽃이 지고 장미가 필 무렵이 되면 늘 봄과 함께하는 동안 내가 이 하늘이 내린 은혜를 충분히 상찬하지 못하고 말았다는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초원에 나가 있어도 좋았을 때에 나는 책 속에 묻혀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책에서 얻은 이득이 초원에서 얻었을 이득과 대등했던가? 나는 정신이 주장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의혹과 낙담을 느낀다.

  나는 낱낱의 꽃이 필 때마다 그게 무슨 꽃인지 알아맞힌다든가 또는 움트는 가지들이 밤사이에 녹색 옷을 입은 것을 보고 놀랄 때 같은 그런 환희의 순간들을 회고해 본다. 산사나무를 덮은 하얀 꽃이 눈처럼 휘황하던 첫 순간도 나는 놓치지 않고 보았다. 봄이면 앵초 꽃이 늘 보이던 그 둑에서 첫 꽃이 피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 군락지 속에서 바람꽃도 보았다. 초원에서 빛나던 미나리아재비 꽃이며 움푹 파인 땅을 햇빛처럼 환하게 비추던 동이나물 꽃과 마주치면 나는 오랫동안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은빛 솜털 개지에 금빛 꽃가루를 화려히 띄고 번뜩이던 갯버들도 보았다. 이 흔한 것을 바라볼 때면 해마다 나는 더 큰 찬탄과 경이를 느끼게 된다. 이런 것들이 다시 한 번 사라진다. 여름을 맞이하려니 일종의 불안감이 내 환희에 섞인다. (Spring 25)

  그 황금빛 시간에 산책을 하다가 커다란 마로니에나무에 이르니 무성한 잎 그늘 속에서 그 뿌리가 편리한 좌석이 된다. 그 휴식처에서는 넓은 풍경을 볼 수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은 곡식밭 가장자리에 양귀비와 들갓 꽃으로 온통 뒤덮인 황무지의 한 구석 뿐이지만 그것이면 내게는 족하다. 불타는 듯한 빨간 꽃과 노란 꽃이 화려한 햇빛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근처에는 크고 하얀 메꽃이 덮인 생울타리도 있다. 눈이 쉽게 지치지 않는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작은 식물로 레스트해로라는 잡초가 있다.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면 그 꽃이 풍기는 이상하게 향긋한 냄새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 특이한 기쁨의 유래를 나는 안다. 이 레스트해로는 이따금 바닷가의 모래밭에서도 자란다. 어린 시절 나는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그런 해변 풀밭에 여러 차례 누워 있었다. 그 작은 장미색 분홍 꽃이 내 얼굴에 스칠 때 나는, 비록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그 향내를 맡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그 냄새를 맡기만 해도 그 시절이 생각난다. (Summer 8)

  우리 집 정원을 돌보는 사람은 성실하지만 내 별난 취향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해 한다. 그가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릴 때면 나는 자주 그 눈에서 왜 저러실까 하는 기색을 읽는다. 그는 화단을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으로 배치하고 앞마당의 한 뙈기를 참으로 깔끔하게 꾸미려 하지만 내가 그걸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는 나의 고집을 쩨쩨한 성미 탓으로 돌렸지만, 지금은 물론 그것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수치스럽게 여길 정도로 보잘것없고 수수한 정원을 내가 선호한다는 사실을 그는 믿기 어려워 하지만, 물론 나는 변명하려다가 오래 전에 포기했다. 그 착한 정원사는 아마도 내가 너무 많은 책을 읽고 너무 고독하게 사는 사이에 그만 그가 생각하는 나의 ‘이유’까지도 그 영향을 받게 되었을 거라고 단정하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정원에 심고 싶은 꽃은 기껏 예전에 유행하던 장미, 해바라기, 접시꽃, 백합 같은 것들뿐인데, 이런 꽃들이 되도록 들꽃처럼 자라기를 바란다. 잘 손질된 대칭 배열의 화단을 나는 싫어하고, 사람들이 그런 화단에 심는 ‘존시아’니 ‘스눅시아’니 하는 괴상한 이름을 가진 잡종 꽃들은 눈에 거슬릴 뿐이다. 한편 정원은 어디까지나 정원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내 산책길이나 들판에서 나에게 위안을 주는 들꽃들을 내 정원에다 옮겨 심지는 않겠다. 예를 들어 디기탈리스를 정원에 이식해 놓은 것을 보게 된다면 내게는 고통이 될 것이다.

  지금 디기탈리스가 한창이기 때문에 나는 그 꽃을 생각한다. 어제 나는 해마다 이맘때 찾아가던 길에 가 보았다. 수레바퀴 자국이 깊이 나 있는 그 길을 따라 거대한 고사리과 식물이 덮여 있고 느릅나무와 개암나무가 굽어보는 둔덕 사이를 내려가면 시원하게 풀이 무성한 구석에 이르게 되는데 바로 그곳에서 거의 내 키 높이의 꽃대에 고귀한 꽃들이 매달려 있었다. 그곳에서보다 더 화려하게 핀 디기탈리스를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다. 내가 그 꽃을 보고 그토록 좋아한 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그 꽃만큼 인상적인 들꽃이 없다. 나는 물가에 핀 큰까치수영이나 고요한 연못에 떠 있는 하얀 수련을 보기 위해서 몇 마일이건 걸어가듯이 디기탈리스의 멋진 군락지를 보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여러 마일이라도 걸어가겠다. (Summer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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