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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싱의 수상록 - 4회분 텍스트 초록 / 월류봉 이상옥
분류: 여행 & 기타
이름: 김필연


등록일: 2018-02-07 15:28
조회수: 80


<기싱의 수상록> 번역본에서 발췌한 글 -- 그 네번째 토막을 올립니다.(월류봉)





   올해는 오랫동안 햇빛을 볼 수 있었다. 잇달아 여러 달 동안 험상궂은 하늘이 별로 없었다. 7월이 8월로, 8월이 9월로 바뀌는데도 나는 거의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오솔길이 가을꽃으로 노랗게 장식되지 않았던들 여전히 여름인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각종 조밥나물(hawkweed)로 인해 바쁘다. 말인즉, 되도록 여러 가지의 조밥나물을 구별해서 그 이름을 익히고 있다는 뜻이다. 과학적 분류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런 것은 내 사고습성에 적합하지도 않다. 하지만 나는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꽃의 이름을 부르되 가급적이면 학명이 아니라 속명(俗名)으로 불러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오, 이건 일종의 조밥나물이군”이라고 말하고는 만족해서야 되겠는가? 그건 내가 노란 색 설상화(舌狀花)를 볼 때마다 ‘민들레’라고 부르고 마는 것에 비해서나 조금 덜 불미스러울 뿐이다. 내가 꽃의 개성을 인정해 주면 꽃도 기뻐할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모든 꽃들에게 하나같이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적어도 낱낱의 꽃을 구별해서 반길 수는 있어야 한다. 똑같은 이유에서 개별적 이름을 모를 경우에도 ‘히에라키움’(hieracium)이라는 라틴어 속명(屬名)보다는 hawkweed라는 영어 이름으로 불러주고 싶다. 친근한 이름이 더 다정하게 들리는 법이다. (Autumn 1)

   오늘 있었던 일을 얼마쯤 기록해 두지 않고는 하루를 마감하고 눈을 감을 수 없다. 하지만 정작 기록하려니 우둔한 언어의 한계를 느낀다. 해 뜰 무렵에 밖을 내다보니 손바닥 만한 작은 구름조차 볼 수 없었다. 이슬 위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신성한 아침에 잎새들은 마치 환희에 겨운 듯이 조용히 떨리고 있었다. 해가 질 무렵 우리 집 위쪽 초원에 서서 자줏빛 저녁 안개 속으로 떨어지고 있는 빨간 해를 지켜보는 동안 등 뒤의 보랏빛 하늘에 동그란 달이 떠올랐다. 해가 떠서 지기까지 해시계의 그림자가 조용히 도는 동안 낮 시간은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답고 조용하기만 했다. 생각해보니 일찍이 가을이 느티나무와 너도밤나무에 이처럼 화려한 옷을 입혔던 적이 없었다. 우리 집 벽을 덮고 있는 잎이 이토록 고귀한 진홍색으로 불탔던 적도 없었다.

  오늘 같은 날은 반드시 밖에서 방랑하고 다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파란 하늘 혹은 황금빛 하늘 아래서 어디를 보나 아름다운 것만 눈에 띄므로 이런 곳에서는 꿈결 같은 휴식을 하며 자연과 일체가 되기만 해도 족하다. 수확이 끝나 그루터기만 남은 들판에서 까마귀들이 길게 까옥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이따금 졸음에 겨운 수탉의 울음이 근처에 농가가 있음을 말해주는가 하면, 우리 집 비둘기들은 자기네 집에 앉아 구욱구욱 울고 있었다. 노랑나비 한 마리가 반짝이는 정원에서 미미하게 떨리는 공기에 이리저리 밀리는 듯이 날아다니는 것을 지켜보기 시작한 지가 5분쯤 되었을까 아니면 한 시간이나 되었을까? 해마다 가을이 되면 오늘 같이 흠잡을 수 없는 날이 하루쯤은 있다. 일찍이 내가 알던 그 어느 것도 이처럼 내 마음에 반가운 기분이 들게 하고 평안의 기약을 실현해 준 적이 없다. (Autumn 18)

   어제 나는 한 아름다운 고가(古家)로 통하는 넓은 느티나무 길을 지나갔다. 양쪽으로 나무가 늘어 선 길에 온통 낙엽이 덮여 있어서 마치 창백한 황금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했다. 더 나아가니까 낙엽송이 주종을 이루는 조림지대가 나타났다. 그곳은 가장 화려한 금빛을 발하고 있었고, 여기저기 핏빛 붉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곳이 보였는데 그것은 때마침 추색(秋色)을 절정으로 과시하고 있는 한 그루씩의 어린 너도밤나무였다.

   갈색 개지를 잔뜩 달고 있는 한 그루 오리나무를 바라보니 그 무뚝뚝한 잎이 여러 가지 아름다운 색상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근처에는 한 그루의 마로니에도 서 있었는데 가지에 아직도 매달려 있는 몇몇 개의 잎은 진한 귤색이었다. 보리수나무는 이미 헐벗고 있었다.

   오늘밤에는 바람이 요란하고 비가 창문을 때리는구나. 내일 아침에 잠이 깨면 겨울 하늘을 보게 되리라. (Autumn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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